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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지혜 - 적의 욕망을 이용하라

 

전국시대(BC 770 ~ BC 476) 진나라가 주나라에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구정(九鼎)을 내놓으시오."

이때의 주나라는 흔히 동주다. 앞서 BC 1046년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주왕실과 구분하기 위한 이름이다.

그랬다. 주나라는 불과 400년 전만해도 천자, 하늘의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였다. 천하를 통일한 주 왕실은 이후 봉건제도를 실시해 천하 각지를 제후들에게 나눠 다스리도록 했다.

천하의 제후들은 자신의 영토를 열심히 다스려 막대한 부를 이루고, 병사를 키웠다.

하지만 정작 왕실의 힘이 쇠락했다. BC 771년 견융에 쫓겨 당시 수도였던 호경(鎬京, 현재의 산시성 시안 부근)을 잃고 낙읍(洛邑, 현재의 뤄양)을 새로운 수도로 삼았다. 바로 동주의 시작이었다.

 

 

전국시대는 춘추시대에 이어진다. 춘추는 동주의 시작부터 중원의 패주였던 진나라가 3명의 실권자인 한씨, 조씨, 위씨 등에 의해 나눠진 BC 403년부터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BC 221년까지다.

구정은 중국 하나라의 우왕이 전국 9개 주에서 쇠붙이를 거둬 만들었다는 솥이다. 훗날 주나라까지 전해져 천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이 됐다.

진나라가 동주에 가서 그런 구정을 달라고 하니, 주나라 왕실의 권위가 어디까지 떨어졌는지 족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주나라 입장에서는 그것을 쉽게 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진나라는 당대 패주였고, 춘추시대와 달리 전국시대에 와서는 제후들도 주왕실의 권위를 대놓고 무시했다. 말 그대로 힘이면 다 되던 시절이었다.

진나라의 요구에 주나라 왕실이 혼란에 빠졌다. 마침 주나라에는 대부 안율(顔率)이라는 슬기로운 이가 있었다. 왕이 안율에게 물었다. "어찌하면 좋겠소?" 안율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제나라에 가서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당시 동주는 위나라와 한나라에 둘러싸여 있었다. 멀리서 진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동주를 치려면 이 나라를 지나야 했다. 제나라는 산동지역의 동주와는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안율이 위나라나 한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제나라를 떠올린 것은 두 가지 이유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진나라의 군사가 한나라나 위나라의 땅을 지나 동주를 공격한다는 것은 이미 그 두 나라와 협력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둘째 이유는 이번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나면 안다. 첫째나 둘째 모두를 고려한 판단일 수도 있겠다 싶다.

 

안율은 제나라에 가서 이렇게 말했다.

"진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구정을 달라고 합니다. 도적의 행태입니다. 진나라의 군사를 막아주면 차라리 그 구정을 제나라에 드리겠습니다. 제나라는 천자를 보호한 미명을 얻고, 구정이라는 실리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말을 들은 제나라 왕이 군사 5만을 일으켜 동주를 도와 진나라를 위협했다. 진나라는 서둘러 군사를 물렸다. 주나라를 도와 진을 물리친 제나라는 "이제는 구정을 달라"고 동주를 압박했다. 왕은 다시 안율을 찾았다. "제나라가 독촉을 하고 있소. 어쩌면 좋겠오?"

안율이 웃으며 왕을 안심시켰다. "제가 가서 해결하겠습니다." 여기서부터 앞에서 생략했던 두 번째 이유가 나온다.

 

 

 

안율이 제나라 왕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구정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가져가시겠습니까? 일단 과거 기록에 따르면 솥 하나를 옮기는 데 9만 명이 마차를 끌었다 했습니다. 그런 솥이 9개이니, 81만 명이 필요합니다. 제나라로 정을 옮기려면 초나라를 지나야 하는데 이 많은 인원이 초나라의 허락 없이 움직인다는 게 불가능합니다. 초나라도 일찌감치 구정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태입니다. 초나라 손에 구정이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기 힘듭니다."

제나라 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과인은 도대체 어느 길을 이용해야 구정을 제나라로 가져올 수 있겠는가?" 

안율이 답했다.

"일단 왕께서 답을 찾으시면 바로 알려주십시오. 그럼 바로 구정을 제나라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옮기는 방법이나 길에 대해서는 동주도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장은 답이 없습니다. 구정이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니고, 구정을 격식에 맞춰 옮기려면 막대한 양의 예물이 필요합니다. 다만 답을 찾을 때까지 어쩔 수 없이 구정은 동주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동주는 누가 봐도 구정을 주겠다는 입장인데, 제나라는 그것을 가져갈 방법이 없었다. 제나라 왕은 결국 구정을 포기해야 했다.

전국책의 첫 번째 이야기다. 안율은 제나라가 구정을 가져갈 능력이 없다는 것까지 간파한 것이다. 제나라에는 인재가 없었을까? 어째서 안율의 꾀에 넘어갔을까?

 

욕심 때문이다. 진나라가 동주를 친 것도 욕심 때문이요, 제나라가 동주를 도운 것도 욕심 때문이었다. 욕심이 지나치면 눈앞의 불가능을 보지 못한다. 호의 뒤에 숨은 의도를 알지 못한다. 안율은 그런 제나라의 욕심을 간파하고, 이웃의 강국인 초나라나 한나라, 위나라에 도움을 청하지 않고 국경을 마주하지 않은 제나라를 찾은 것이다.

우리는 흔히 "해주고 싶어도 해줄 길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처음 감언이설로 부탁을 해오다 원하는 것은 정작 얻고 나면 이 같은 변명을 하기 일쑤다. 안율의 계략은 사실 구도가 단순하다. "네가 A를 해주기만 하면 내가 B를 해줄게"라는 것이다. B로 유혹해서 A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체로 A는 어려운 일인데, A를 해주고 나면 정작 B를 받기 불가능한 이유가 따로 있다.

 

동주의 구정 이야기는 소유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한 번 하게 한다. 동주는 그 뒤 "구정은 제나라 것이다"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제나라가 구정을 소유하기란 불가능하다. 제나라가 얻은 것은 구정의 주인이라는 이름, 명(名)분뿐이다. 동주는 이름은 잃었지만 구정을 실제 소유하는 실(實)익을 챙겼다. 진정한 소유란 명실이 서로 같아야 하는 것이다. 명실상부란 말이 이 이야기 덕에 새롭다.

참고로 안율은 전국책에 자주 등장하는 책사다. 중국 바이두 자료를 보면 "입 하나로 나라를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했다"고 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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