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믿지 않고 행하는 일은 성공할 수 없다.


疑行無成, 疑事無功

의행무성, 의사무공




疑行無成, 疑事無功

의행무성, 의사무공



"의심하며 행하면 이룰 수 없고, 의심하며 일하면 공이 있을 수 없다."



춘추전국 진나라의 천하통일의 기틀을 다진 상앙의 말이다.

 

당연하고 쉽다.

 

하지만,

 

평생 이보다 지키기 어려운 말을 듣지 못했다.

 

"에이, 내가 옛날에 그것만 했어도 …"

 

"별것 아냐, 나도 안 해서 그렇지 다 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던지는 말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라, 과연 그때 정말 그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많은 이들이 많은 상상을 하고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고

 

많은 사업 아이템을 고민한다.

 

하지만 정작 일에 착수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왜?

 

이유는 '만에 하나'가 두렵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99.99%의 성공을 확신하다, 최후 결심의 순간에 0.001%의 실패의 가능성 때문에 포기를 한다.

 

0.001%의 가능성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누구나 알듯 그 숫자만큼 적다.

 

하지만

 

결심을 앞둔 순간 이 0.001%의 실패의 가능성은 일을 착수하는 데 최대 관건이 된다.

 

웬만한 이들은 

 

이 0.001% 실패의 가능성에 좌절하고 만다.

 

그래도 좌절해 일에 착수하지 않았다면 다행이다.

 

상앙이 지적하듯,

 

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0.001% 실패의 가능성에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다.

 

사실 이 0.001%의 실패의 가능성은

 

아무리 고민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운이다.

 

현존하는 조건이 아니란 의미다.

 

그런데 이 0.001%에 매달리면,

 

99.99%의 성공 가능성도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의심의 틈에 

 

의심이 생기고,

 

불안이 생기고,

 

다시 의심을 증폭시킨다.

 

의심은 일을 시작하지도 못하게 하지만.

 

시작한 일도 성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삶은

 

대부분

 

99.99%의 확실함으로 이뤄진다.

 

0.001%의 불확실함은

 

그에 비하면

 

정말 작디작은 숫자다.

 

 

그 작은 것 때문에 큰일을 못하는가?

 

그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망치는가?

 

 

 


사회

더보기
"급식체는 언어의 자연스런 변화" VS "사자성어도 말할 수 있다"
최근 중국에서 한 영상이 화제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영상은 소위 ‘급식체’를 쓰는 어린이들이 옛 사자성어로 풀어서 말하는 것이었다. 영상은 초등학생 주인공이 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包的’라고 말하지 않지만, ‘志在必得’, ‘万无一失’, ‘稳操胜券’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老铁’라고 말하지 않지만, ‘莫逆之交’, ‘情同手足’, ‘肝胆相照’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绝绝子’라고 말하지 않지만, ‘无与伦比’, ‘叹为观止’라고 말할 수 있다…” ‘包的’는 승리의 비전을 갖다는 의미의 중국식 급식체이고 지재필득(志在必得)은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의미의 성어다. 만무일실(万无一失)을 실패한 일이 없다는 뜻이고 온조승권(稳操胜券)은 승리를 확신한다는 의미다. 모두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뜻하는 말이다. 초등학생이 급식체를 쓰지 말고, 고전의 사자성어를 다시 쓰자고 역설하는 내용인 것이다. 논란은 이 영상이 지나치게 교육적이라는 데 있다.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초등학생의 태도에 공감을 표시하고 옛 것을 되살리자는 취지에 공감했지만, 역시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자연스럽지 않은 억지로 만든 영상이라고 폄훼했다. 평파이 등 중국 매체들에

문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