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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높은 것인가? 1

높이 오르고 싶다. 모든 사람이 가지는 욕망이다. 그런데 오르고 오르는데 참 끝이 없는 게 높은 곳을 향한 욕망이다. 이제 됐다 싶은데 또 앞에 더 높은 산이 ‘나를 올라와 보라’ 유혹을 한다.  

 

 

그런데 과연 높이 오른다는 게 무엇일까? 어디를 올라야 높이 올랐다고 할까? 답은 쉽지가 않다. 그래서 모두가  속 편하게 정상에만 서려고 한다. 정상에 서면 최소한 모두가 인정하는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보다 높은 봉우리가 있다면 어떻게 할까? 
무엇보다 산의 정상에는 여러 사람이 설 수 있지만, 인간사의 정상은 언제나 '1등' 한 명뿐이다.  

 


도대체 누가 있어 위를 안다고 할 것인가” 



한자  ()은 이 질문의 답을 찾는 열쇠다.   자는 대표적인 지사자다. 생각을 옮긴 한자라는 의미다. 던져진 질문에 대한 수천 년 내려온 고민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상자는 갑골문과 금문에서  위의 점으로 표현돼 있다쉽게 말해 기준 위에 있다는 것이다. 뒤로 지나면서 이 기준과 점은 선으로 연결돼 있다. 기준 위의 어떤 점도 모두 위라는 의미다. 즉 위의 기준은 상대적인 게  아니고, 절대적인 것이라는 의미다. 좀 더 쉽게 말해 "위를 알려면 그 가장 아래를 보라"는 것이다. 위의 위에는 항상 그 위의 위가 있으니 위가 무엇인지 알려면 위들의 가장 아래를 보라는 것이다. 참 단순하면서도 현묘하다. 두 말 것 없이 아래 하(下) 역시 마찬가지다. 아래의 아래를 알려면 그 아래들의 가장 높은 곳을 보라는 의미다. 아래의 아래에는 항상 또 그 '아래의 아래'의 아래가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위를 알려면 가장 밑을 먼저 보라.” 

물론 아주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상하를 구분 짓는 기준은 개인과 개인, 사회와 사회가 다를 수 있다. 그래도 한 개인이 스스로 상하를 구분 짓는 절대적 기준을 갖추면 위의 위만 쫓는 욕망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왜냐하면 '위의 위'만 쫓는 상대적 기준은 영원히 그 기준을 만족할 수 없지만, 절대적 기준은 노력으로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 기준이 있고서야 스스로 자족할 수 있다. 아래 하 역시 마찬가지다. 비천한 것들끼리 서로 더 비천하다 하는 비천한 짓거리를 피할 수 있다. 한자 상, 하 자는 그 모양은 단순하지만 그 뜻은 이리도 현묘하기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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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체는 언어의 자연스런 변화" VS "사자성어도 말할 수 있다"
최근 중국에서 한 영상이 화제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영상은 소위 ‘급식체’를 쓰는 어린이들이 옛 사자성어로 풀어서 말하는 것이었다. 영상은 초등학생 주인공이 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包的’라고 말하지 않지만, ‘志在必得’, ‘万无一失’, ‘稳操胜券’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老铁’라고 말하지 않지만, ‘莫逆之交’, ‘情同手足’, ‘肝胆相照’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绝绝子’라고 말하지 않지만, ‘无与伦比’, ‘叹为观止’라고 말할 수 있다…” ‘包的’는 승리의 비전을 갖다는 의미의 중국식 급식체이고 지재필득(志在必得)은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의미의 성어다. 만무일실(万无一失)을 실패한 일이 없다는 뜻이고 온조승권(稳操胜券)은 승리를 확신한다는 의미다. 모두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뜻하는 말이다. 초등학생이 급식체를 쓰지 말고, 고전의 사자성어를 다시 쓰자고 역설하는 내용인 것이다. 논란은 이 영상이 지나치게 교육적이라는 데 있다.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초등학생의 태도에 공감을 표시하고 옛 것을 되살리자는 취지에 공감했지만, 역시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자연스럽지 않은 억지로 만든 영상이라고 폄훼했다. 평파이 등 중국 매체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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