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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의 시작 - 호암 이병철(27)

‘돈병철’(錢鬼), 고 이병철 삼성명예회장에게 붙었던 별명이다. 한국에서 돈을 가장 많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돈만 안다는 폄하의 뜻도 있다.

 

 

돈이 많다? 사실이었다.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의 성공으로 이병철은 스스로 고백했듯 한국에서 젖먹이 어린이만 빼고 모두가 다 아는 이름이 됐다. 당시 한국 세금의 4%를 이병철과 그의 회사가 냈다. 당시 한국이 아무리 못살아도 한 나라의 경제 세수의 4%를 한 사람과 한 기업이 책임진다는 게 결코 적은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뿐이 아니었다. 돈 병철이란 별명을 또 다른 계기가 있었다. 이병철은 한국 모든 시중은행의 대주주였던 적이 있었다. 은행이란 곳이 어떤 곳인가? 돈을 맡기고 관리하는 기구다. 이런 기구의 전부가 삼성 이병철 회장의 소유였던 적이 있다니? 무슨 사연일까?

 

 

1956년 직후의 일이다. 당시 한국전쟁도 마무리돼 한국 경제가 안정을 찾기 시작할 때였다. 앞에서도 여러차례 설명했지만, 일본이 패망을 해 한국이 독립한 뒤 이어 한국전쟁까지 한국 경제는 혼란 그 자체였다. 인플레이션이 극심해 하루에 자고나면 물건 값이 배로 뛸 정도였다. 전쟁으로 물자가 귀해지면서 인플레이션은 더욱 심했다.

 

 

그런 현상이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한 게 1956년 들어서다. 1953년 휴전으로 나라가 안정을 찾으면서 경제도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래도 당시 금리는 20%를 웃돌 정도였다.

 

 

당시 한국에는 현재 신한금융지주에 합병된 조흥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이 4곳이 있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경영할 때 만들어진 은행들이다. 일본 대주주들이 있었는데, 한국이 독립하면서 자연스럽게 모두 정부 소유가 됐다. 1956년 한국 정부는 이들 은행을 민영화해서 한국 금융시장의 안정을 보다 빠르게 찾기를 원했다.

 

 

수차례에 걸쳐 이병철의 삼성물산도 참여를 했고, 이들 시중은행 4곳의 50%이상 경영권을 확보하는 지분을 갖게 된 것이다. 이병철은 본래 입찰만 했을 뿐인데, 정부가 이병철이 입찰한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지분을 사길 원했다. 결국 그렇게 정부의 뜻에 따라 이병철은 대한민국 모든 은행의 경영권을 갖게 된다.

 

 

 

오늘날 한국 정부가 금융회사를 산업자본이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금산분리’ 원칙을 세계 어느 나라 보다 철저히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볼 때 참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병철은 이렇게 썼다. “이미 산업계에서 차지하는 삼성의 비중이 큰 터에, 금융기관까지 장악했으니, 삼성의 우위는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이 입장을 이용하여 임의로 금융기관을 운영하고자 했던 것을 결코 아니다. 시중은행주르 f 매수한 것은 이 나라 금융의 근대화를 기필코 실현하자는 일념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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