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2월 20일은 포루투칼의 식민지였던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된지 21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오전 마카오특별행정구의 진리엔화 광장 ( 金莲花广场)에서는 반환기념식이 거행됐다. 지난해 12월 20일에는 시진핑 주석내외가 참석한 가운데, 반환 2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진행해, 홍콩에 보란듯이, 마카오의 1국 2체제의 안정과 발전을 과시하기도 했다. 마카오는 2000년 밀레니엄 열흘전인 1999년 12월 20일 , 홍콩 ( 1997년 7월 1일 반환)보다 약 2년 늦게 중국에 정식으로 반환됐다. 현재 상주인구는 약 70만명으로 추산되고, 면적인 서울 강남구보다 조금 작은 32만 평방킬로미터이다. 홍콩의 식민역사를 1892년 아편전쟁이후로 본다면, 마카오의 식민역사는 훨씬 오래돼 1500년대 중반(1542년 경)부터 중국내륙 무역을 위한 상인집단과 상단보호를 명분으로 한 약간의 군대가 거주를 시작했다. 식민지의 형태도 홍콩과 많이 달라, 당시 명나라 시절 광동성 주둔 명군은 포루투칼 군의 조총과 화포만 없었을 뿐 전력이 월등했기에, 당시 포루투칼측에서는 명나라 조정에 세금을 내면서 임대형식으로 땅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아편전쟁 난징조약으로 홍
오늘 12월 13일은, 1937년 중국 난징대학살이 일어난 지 83주년이 되는 날이다. 1931년에 만주전쟁을 일으키고 만주국을 세워 동북3성을 실효지배하고 있었던 일본은,, 중국대륙에서 국민당군과 공산당군의 내전의 혼란을 틈타, 1937년 7월 7일 베이징 인근에서 루거우치아오사건으로 트집을 잡아, 베이징을 점령하고 남침하면서 전면적인 중일전쟁을 일으킨다. 이후 넉달 만인 11월 초에 국민당 수도였던 쟝쑤성 난징시까지 진격해, 난징시민들을 무차별 살륙하는 난징 대학살사건을 일으키며 12월 13일 국민당의 심장을 점령한다. 중국자료에 의하면, 일본군은 이 약 40여일 동안 난징에서 약 30만명의 주민들을 학살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후 77년만인 2014년 2월 27일, 중국 전국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 7차 회의는 매년 12월 13일을, 난징대학살희생자를 위한 국가 추모일 ( 南京大屠杀死难者国家公祭日) 로 공식 선포한다. 그리고 10달 뒤, 국가 추모일로 지정된 첫 해인 2014년 12월 13일엔, 시진핑국가주석이 직접 참석해, 과거 역사의 치욕을 잊지 않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길을 개척할 것이라는 비장한 연설을 했고, 이 광경은 약 2시간동안 14억 인
중국이 1950년 10월 19일부터 참전했던 한국전쟁, 중국에서 불리는 이름으로는 항미원조전쟁에 참전했다 희생된 중국군 지원군의 숫자는, 중국이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공식적으로 19만 7653명이다. 이들은 모두 션양항미원조열사능원 ( 沈阳抗美援朝烈士陵园/ '미국에 항거하면서 조선을 도운 전쟁에서 숨진열사들을 안장한 곳' 이라는 뜻) 에서 기념되고 있다. 션양 (沈阳) 시는 동북3성 중 남쪽에 위치한 랴오닝성의 성도로 2018년 현재 상주인구가 820만명이 되는 대도시로 한국인들도 적지 않게 거주하는 곳이다. 오늘 인천공항을 떠나 중국 군용기편으로 송환된 중국군 지원자 유해 117구도 션양항미원조열사능원에 안장돼 기념된다. 중국은 한국전쟁에 참전을 시작한 다음해인 1951년부터 전쟁중 희생된 인민해방군들을 이곳에 묻거나 비석을 세워 희생자를 기려오다, 1999년에 10월 15일 오늘날의 모습으로 , 항미원조열사능원을 조성했다. 이 기념능원 안에는 2천평방미터에 달하는 기념관이 있으며 전쟁관련 무기와 사진 그리고 당시를 그림으로 기념하는 회화등 449 점이 전시돼 있다. 중국은 항미원조열사로 추존하고 있는 약 19만여명 중, 전쟁발발이전의 38도선 그리고 휴
인민일보는 최근, 중국의 중의약(中医药 )이 중국의 코로나19창궐때 어떤 약으로 환자들의 생명을 구했는지에 대한 흥미있는 영상 인터뷰를 내보냈다. 즉 베이징의 저명한 중의약 전문의 중의와의 인터뷰를 갖고, 중의약이 어떻게 코로나19를 지료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영상을 내보낸 것이다. 중국은 지난 1월 초 우한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시작되자마자,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1,000개 병상의 훠선샨 특별의원을 10일만에 새로 건설해 중중의 위급환자들을 다 입원시키고 철저히 격리시켰다. 이곳에서는 이후 양의학 치료를 집중했다. 그리고 중중 초기환자와 경증환자들을 우한시의 대형전시관과 체육관에 임시병원인 방창의원(方舱医院)을 건설해, 역시 일반인들로부터 격리시켰다. 이 곳에서는 이후 중의학 지료를 집중했다. 중국당국은 이 중증과 경증환자를 격리한 방창의원에, 텐진 중의약대학의 총장으로 하여금 대규모 중의약(中医药药)전문의 중의(中医) 치료단을 조직하게 해 우한으로 급파시켰다. 약 500여명의 중의학의료진을 인솔하고 우한 방창의원의 경증환자들의 치료를 전담했던 장뽀리 (张伯礼) 텐진중의약대학 총장팀은, 즉시 서양의약처방에 중의약처방을 혼용해 투약시켰고
위 사진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국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에 미국등 유엔군이 참전한 이후 북한지역으로의 반격이 시작돼 북한 전역의 함락이 예상되자, 북한이 중국에 구원을 요청했고, 이에 중국이 인민해방군을 북한에 파견하는 장면을 담은 것이다. 중국은 1950년 10월 19일부터 인민해방군중에서 먼저 지원군을 받아, 38, 39, 40, 42 연대를 조직해 당시 안동( 安东) 시로 불렸던 지금의 단동시의 압록강철교를 걸어서 북한에서 벌어진 미군과의 전장으로 투입했다. 위 사진은 1950 년 8월 27일 연합군의 일원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의 공군기가 중국의 참전 이전에도 중국의 동북지방의 중국영공을 침입해 무단폭격을 했다고 중국 청년보가 게재한 사진가운데 하나이다. 중미양국이 양국간 국가이익을 놓고 한 치의 양보없는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950년 한국전쟁에서 북한을 도와 참전한 중국이 2020년 항미원조전쟁 공식 기념일인 10월 25일, 북중 국경도시 단동시에서 새로운 항미원조전쟁의 기념관의 준공식이 대대적으로 준비되고 있다는 현지소식통의 전언이 있다. 새 기념관의 건립현장 주변에는 특히 외국언론의 접근이 막혀있고, 중국 국내언론도
작금의 홍콩의 사태는 2010년대부터 홍콩의 반중세력들이 홍콩행정장관 직선제를 내세우면서 시작된 혼란의 산물이라는 논의가 있다. 중국과 홍콩은, 1997년 영국이 150여년을 식민지배했던 홍콩을 돌려주고, 중국은 150여년을 빼앗겼던 홍콩을 되돌려 받는 그런 관계였다. 두 나라는 향후 홍콩의 과도기간을 50년으로 정하고 홍콩기본법에 합의했다. 양국이 합의한 홍콩기본법에 따르면, 홍콩행정장관은 800명의 선거인단의 투표로 간접선거하기로 돼있다. 그 임기는 5년이고 한 번 더 연임할 수 있게 돼있다. 그렇게 합의된 규정에 의해 1997년부터 홍콩내 명망있는 인사들이 홍콩행정장관을 역임하고, 2020년 현재 홍콩행정장관인 캐리 람은 제 5대 장관으로서 2017년에 임명돼 2022년까지 1차 임기를 수행하는 중이다. 그런데 지난 2014년 홍콩의 반중세력은 홍콩행정장관의 직선제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고, 그 때부터 홍콩의 정정이 내내 불안해져 오다가, 미국 트럼프정부의 등장이후 직간접적인 홍콩간섭이 본격화되었고, 코로나 사태로 트럼프의 재선이 불확실해지면서 중미 무역분쟁속에서 홍콩이 핫 플레이스가 되버린 양상이다. 1984년 9월 26일 중국과 영국이 베이징에서 사
그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홍콩보안법에 대한 관심이 요즘은, 오는 9월 6일에 치뤄질 홍콩 입법회의원 선거뉴스로 옮겨진 것같다. 대체라기보다는 2020년 홍콩의 봄과 중미관계를 뜨겁게 달궜던 홍콩보안법의 제정과 시행의 연장선상에서 주목을 받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9월의 입법회 선거에서 반중파가 다수를 점해, 홍콩보안법을 백지화시키기고 반중에 앞장서서 홍콩독립하라며, 격려하고 부추기고 보도자료를 내며 세계의 반중분위기를 고양시키는 형국이다. 영국등 서방이 홍콩을 격려하고 부추긴 것은 2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먼저 궁금하다. 영국은 홍콩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동안에, 홍콩인의 대표들로 입법회를 구성해서, 홍콩인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식민지홍콩을 지배했을까 ? 아니다. 그렇다면 영국이 지금 지지한다는, 홍콩인들의 자치기구인 입법회의가 언제부터 생긴 기구인지 궁금해진다. 1995년이다. 1995년이면 홍콩반환 1997년의 2년 전의 일이다. 토탈 157년이나 홍콩을 식민지배한 영국은, 식민지배 155년 째되던 해에, 즉 중국에 돌려주기 2년전에야 홍콩에 입법회의를 구성하라고 허용했다. 2년 있으면 원주인인 중국에게 돌려줘야 하는데, 그럴려면 70년대나 8
코로나19로 예년에 비해 두 달이나 늦게 열리고 기간을 단축해 폐회한 2020년 양회에서, 중국인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정치협상회의의 위원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은 주쩡푸 (朱征夫) , 올해 57세인 그는 광동성 광저우시의 대형로펌 인 동방쿤룬법률사무소의 주주이며, 전중국변호사협회 부회장이다. 그는 지난달 정협회의에서, “국가가 모든 인민에게 전염병을 극복한 노고를 치하하고, 어려워진 생활을 보조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국도 탈피하는 방안으로, 14억 인구 모두에게 1인당 2,000 위안씩의 재난 보조금을 지급하자"는 안건을 상정했다고 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중국인민들이 이를 반겼고, 인터넷에서 일거에 젊은이들의 환호를 받았다. 중국 돈 2,000 위안은 환율로 계산하면 우리 한화로 약 35만원 내외가 되지만, 중국물가가 한국에 비해 약 1/3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1백 만원 가량으로, 인민 1인 당 보조금으로서는 매우 많고 후한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의 인구가 14억명이 넘는 관계로 이 보조금 총액은 무려 2조 8천억위안, 한화로 환산하면 약 450조원이란 어마어마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자, 정협내에서도 논란이 적
홍콩의 반중시위로 인한 홍콩탈출러시가 전해지는 가운데, 일부언론들이 홍콩의 대체지로 중국이 하이난 섬을 개발하려 한다는 논조를 보이고 있다. 사실이기도 하고 사실이 아니기도 한 그런 논조이다. 하이난 섬이 중국의 새로운 자유무역항으로 개발되는 건 사실이지만, 홍콩의 대체지로 부각된다는 논조는 그 상관관계가 다소 왜곡됐다는 느낌이다. 현재의 하이난 섬 ( 하이난성)은 , 일찍이 1988년 4월,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이 하이남 섬을, 당시의 광동성 하이난 행정구를 하이난 성으로 승격시키면서, 하이난 경제특구로 지정했던 역사적 사실이 있다. 그리고 2018년 4월에는 시진핑주석이 하이난성을, 중국의 제 2의 개혁개방의 상징으로서, 세계적인 자유무역항과 자유무역지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직접 발표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는, 홍콩의 범죄인 송환법의 문제는, 중국대륙에서도 크게 두드러지지도 않았고, 심지어 홍콩에서 여친을 살해한 파렴치한 살인범의 처벌문제였을 뿐, 반중국시위의 프레임과 전혀 상관없는인도적인 법개정의 사건이었다. 홍콩내부에서 홍콩의 범죄인 송환법개정의 필요성이 처음 거론 된 것은 2018년 3월이다. 그 당시는, 자기 여친과 함께 대만으로…
중국국가는 짧다. 딱 46초다. 우리처럼 1,2,3,4절도 없다. 아래 가사가 전부다. 내용도 명료하다. 起来! 不愿做奴隶的人们! 把我们的血肉,筑成我们新的长城! 中华民族到了最危险的时候, 每个人被迫着发出最后的吼声。 起来! 起来! 起来! 我们万众一心,冒着敌人的炮火前进! 冒着敌人的炮火前进! 前进! 前进! 前进!进! 일어나라 ! (깨어나라!) 노예가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이여 ! 우리의 피와 살로, 우리의 새로운 장성을 만들자 ! 중화민족이 큰 위험에 빠졌으니, 일제이, 마지막 울부짖음을 내 뱉을 때가 되었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모두 한 마음으로, 적진 포화에 맞서 전진하자! 적진 포화에 맞서 전진하자! 전진 ! 전진 ! 전진 ! 나가자 ! 중국국가의 별칭은 의용군행진곡 <义勇军进行曲> 이다. 이 노래는 상하이에서 1935년에 제작된 '풍운남녀' 《风云儿女》라는 영화에 삽입된 제 1주제곡, 즉 ost 인 셈이다. 가사는 한 눈에 봐도 전투적이고 비장하다. 들어보면 힘차고 울림이 장엄하다. 이런 내용과 느낌의 주제곡이 삽입된 영화라면, 영화스토리도 감이 잡힌다. 거기다 이 영화가 개봉됐던 1935년 당시의, 상하이와 중국상황을 보면 영화의 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