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斜阳照墟落,怅然吟式微。”(사양조허락, 창연음식미)
“석양 온 촌락 물들일 때
입가엔 노랫가락 맴돌고”
석양은 자연이 만든 ‘인생이란 극의 막’이다.
하루의 막이 내리면,
붉은 빛이 빛나며
저 멀리 마을부터
조금씩 어둠에 잠기게 된다.
시작은 거창하지만 짧은 오언절구의 시다. 왕유의 위천전가(渭川田家)다. 강변 농가 마을의 전경을 읊었다.
소개한 구절은 중간 모두를 생략하고
시의 첫구와 마지막 구만을 적었다.
사실 시 자체가 그렇다고 느낀 때문이다.
왕유의 시는
강가 전원마을에 저녁 풍경을 그렸지만,
사실은 그 속에 생략된
시인의 인생 전반에 대한 소회를 읊었다는 게 필자의 감상이다.
다시 왕유의 시다.
시는
석양 낀 마을의 평온함을 지켜보는 마음이다.
평온함이 너무나도
포근하게 다가온다.
석양은 사실 ‘순화’(順化)의 상징이다.
어둠의 두려움에 대한 순화다.
어둠을 담대하게 맞는 마음이다.
그 어둠 아래
마지막 빛이
바로 석양이다.
하루의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가끔 산 위에서
바다가 언덕에서
석양을 보면
그 아래
검은 장막의 끝자락
붉은 빛 아래
움직이는 수많은 군상들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가 하루를 마치고
의식하지 못한 채
너무도 익숙하게
어둠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斜阳照墟落,穷巷牛羊归。
野老念牧童,倚杖候荆扉。”
(사양조허락, 궁항우양귀
야로념목동, 의장후형비)
“낡은 성벽 석양 끼면
소, 양 몰아 돌아오고
문 앞 지팡이 기대 서
들녘 목동 찾는 노인.”
“雉雊麦苗秀,蚕眠桑叶稀。
田夫荷锄至,相见语依依。”
(치구맥묘수, 잠면상엽희.
전부하서지, 상견어의의.)
“보리밭 새들 지저귀고
누에도 하나 둘 잠들고
농부는 호미를 챙기며
인사로 하루를 끝내네.”
이 아름다움의 평온한 반복,
그 되풀이됨이 좋기만 하다.
이제 이 하루를 볼 날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감지하게 된다.
그런데 왜 몰랐을까?
‘영원한 어둠’이 곧 온다는 것을.
하루의 석양이
내 인생에도 찾아온다는 것을.
눈앞의 이 평온함이 갑자기
더 소중해지고
안타까울 때 입가에 나도 모르게
노랫가락 흐른다.
필자에겐 조용필의 ‘세월’이요,
왕유에겐 시경의 시구 ‘식미’(式微)다.
“即此羡闲逸,怅然吟式微。”
(즉차선한일, 창연음식미)
“석양 내릴 때
입가에 맴도는 노래 한 구절
‘그대여, 이제 돌아오라’”
식미는 한자로 쇠약해지다는 의미다.
시경의 노래다.
“式微式微 胡不歸”(식미식미 호불귀)
“이제 늙었는데, 어찌 안 돌아오시나”하는 뜻이다.
조용필의 세월도
시경 못지않은 감성이 있다.
석양 낀
자유로를 달릴 때
들으면
왕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외로운 이 마음을
쓸쓸한 내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뜨거운 눈물이
두 뺨을 적셔 외로이 홀로 걸었네.
세월은 흐르고 흐르다
봄은 돌아와도
한번 간 내 사랑
나를 찾아 오려나
나를 버리고 떠나간 그 시절
돌아올까 돌아오려나
잊을 수 없는 세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