被列入世界文化遗产的韩国历史村——安东河回村与庆州良洞村

  • 등록 2017.11.15 14:15:43
크게보기


       被誉为“代表韩国的传统村”的安东河回村与庆州良洞村,是现存的再现韩国人传统生活风貌的空间,现已被列入联合国教科文组织世界文化遗产名录。五彩缤纷的秋叶正点缀着传统村庄的各处,幽静的气氛给人舒适的感觉。来,一起来欣赏一下秋意渐浓的两个传统村吧。

 

笔者 尹真姬 提供图片 文化财厅

 

围绕着河回村的洛东江,江水向东流淌时,又以S形回转过来,形成独特的地理风貌与优美的自然景观。

 

 

宛如浮在水面上莲花的吉祥地,河回村

       最近,安东古宅成了热门话题。在中秋连休期间,文在寅总统访问了河回村的古宅,观看了《河回别神假面戏》,让安东河回村成为话题。

       另外,最近热播的tvN电视台《懂也没用的神秘杂学词典2》把庆尚北道安东选为第一个拍摄地,让幽静的安东古宅重新受到关注。安东主要以河回村与炖鸡出名,但在韩国观光公社评选的84处名品古宅中,26处古宅位于此地,可以说,安东是具有历史悠久的传统建筑与文化的“古宅之乡”。

 

良洞村骊江李氏家族的私塾“讲学堂”,是建于1867年的朝鲜王朝时代传统家宅。


       庆尚北道安东的河回村史许氏与安氏曾经生活的氏族村庄。随着时间的流逝,两个家族都离开了这个村庄,后来的丰山柳氏成了新的大氏族,延续了河回村600年的历史命脉。如今,安东河回村被称为“代表韩国的氏族村庄”。
       这里因围绕着村庄的洛东江的流水以“回”形流淌,故被称为“河回”。从风水地理的角度来看,村落形状宛如浮在水面上的莲花,所以被誉为“吉祥地”。洛东江水向东流淌时,又以S形回转过来,围绕着村庄的东边、西边以及南边,形成独特的地理风貌与优美的自然景观。
       河回村分为南村与北村,村内从受儒教影响的两班的瓦房至普通百姓的草房,都完全保持着过去的模样。最有代表性的古宅有养真堂、忠孝堂、北村宅、南村宅等,也有玉渊精舍、谦菴精舍等精舍建筑。这些建筑物是研究朝鲜王朝时期贵族阶层的生活与建筑结构的重要民俗资料。其中,养真堂与忠孝堂是被指定为宝物的特别建筑。忠孝堂是文禄之役时期领议政柳成龙的家,养真堂是柳成龙的兄长儒学家柳云龙的家。虽是一对兄弟的住宅,但建筑风格独特,有与众不同的特色。

 

退溪李滉之兄温溪李瀣先生所住的河回村温溪宗宅。曾遭日军放火烧毁,在2011年,也就是火灾之后的第110年,重新被修复。


       另外,河回村以普通老百姓的游戏《河回别神假面戏》出名。河回假面被指定为韩国的国宝,制作年代大约在高丽中叶,可以看出,河回村庄历史的悠久。被列为国宝12号的河回假面,是韩国最早的木制假面,但具体的制作年代不详。河回假面有童女、破戒僧、妓女、两班(贵族)、书生、草郎、傻瓜、屠夫、老奶奶、阻击兽(2只)假面。制作假面的时候,让面部左右不对称,以防止面部表情的固定化,并按照各个角色的特性,设计了不同的表情。由于在一个河回假面上可以看到丰富的表情,自古就有关于假面的一个传闻:“河回假面里有神灵,所以戏子笑,假面也笑;戏子发火,假面也发火。”
       在无比优美的景色中,保持着韩国民俗与儒教传统的河回村,在韩国精神文化研究、保存、发展上占有重要的地位。2010年7月31日,河回村被列入联合国教科文组织世界文化遗产名录之后,每年有100万名以上的游客访问。


与朝鲜王朝500年的时间相遇,良洞村
       与安东河回村一起被列入世界文化遗产的庆州良洞村,位于沿着雪苍山下的“勿”字形三个丘陵和山谷之间,在浦项方向的公路上,开2公里左右就能到。良洞村是以月城孙氏与骊江李氏两个家族为中心的氏族村。最初是朝鲜初期月城的孙昭先生入赘骊江李蕃,之后两大氏族便混杂着隐居在这里,度过了近五百年的岁月。

 

传承于河回村的古代老百姓的游戏《河回别神假面戏》。


       从风水地理的角度来看,良洞村具有“财运多”的地形结构,从村庄门口到边缘,都有大型的两班古宅。宗家则按照传统的规矩,选了广阔的山冈,沿着山脉与山溪,排列成一个氏族大家。良洞村是至今还保存着传统的古宅、有关两班阶层的重要民俗资料以及儒教思想与生活习俗的传统村庄。
       村内有许多文化遗产,但其中,传统的古宅是最有特色的。位于良洞村中心的孙氏宗家的书百堂、骊江李氏的大宗家无添堂、充满着李彦迪(朝鲜时代性理学家)对母亲的孝心与对弟弟的兄弟情的香坛、愚斋孙仲暾(朝鲜时代学者)的私家观稼亭等,风格独特的许多古宅建筑形成了幽静又古老的村庄气氛。

 

良洞村孙宗老先生的宗家“乐善堂”,是建于1540年的古宅。“乐善堂”本来是厢房的专属名。


       孙氏与李氏两个家族之间的竞争,使这些古宅的建筑风格更加特别。李氏家族的无添堂是针对孙氏家族的书百堂而建的宗家;李彦迪的香坛则是针对孙氏私家观稼亭而建立的。李彦迪的香坛本为朝鲜时期民间最大规模的宗家,有99个房间,但在一场火灾中烧毁了一部分,如今只留下51个房间。

 

保留着古代上流阶层住宅样式的骊江李氏香坛派的宗家香坛。


       至今还保存着500年历史的良洞村,具有可以欣赏村庄各处的6条徒步路线,不仅能够自由地欣赏朝鲜王朝时期两班的生活风貌,还可以享受村内的南山宅、草原食堂、海底古宅等十多处韩屋提供的住宿服务。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역사마을

 

안동 하회(河回)마을, 경주 양동(良洞)마을

한국의 대표적 전통마을로 꼽히는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 한국의 전통마을 중에서도 전통을 지켜오고 있는 한국적인 마을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두 마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몇 되지 않은 역사마을이다. 형형색색 가을 풍경과 어우러져 고즈넉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전통마을을 찾아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해보자.  

 

 

물 위에 떠 있는 연꽃 형상의 길지, 하회마을

 

안동 고택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에 문재인 대통령이 하회마을을 찾아 고택을 둘러보고 <하회별신굿탈놀이>를 관람해 화제가 되었다. 또한 최근 방영한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2>에서 첫 촬영지로 경북 안동을 선택하면서, 고즈넉한 고택을 재조명하기도 했다. 안동은 하회마을, 찜닭으로도 유명하지만,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명품고택 84곳 중 26곳이 위치할 정도로 역사가 깊은 전통 건물과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고택의 고장이기도 하다.
경북 안동의 하회(
河回)마을은 원래 허씨(許氏)와 안씨(安氏) 중심의 씨족마을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 집안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풍산 류씨(豊山柳氏)가 중심이 돼 터를 닦은 뒤 600년 동안 명맥을 잇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씨족마을이다
.
하회(
河回)’라는 명칭은 마을 주위를 감싸 안고 흐르는 낙동강의 모습이 ()’자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졌다. 풍수지리학적으로 보면 '마을이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의 형상과 같아 길지(吉地)로 꼽히고 있다. 낙동강 줄기가 S자 모양으로 동·남·서를 감싸 돌고 있고 독특한 지리적 형상과 빼어난 자연경관을 갖추고 있다.

남촌과 북촌으로 나누어지는 하회마을에는 유교적인 원리에 의해 지어진 양반가옥들과 서민들의 집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대표적 명가들로는 양진당, 충효당, 북촌택, 남촌택 등이 있으며, 정사로는 옥연정사, 겸암정사 등이 있다. 오늘날 이 건축물들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생활상과 발달된 집 구조 등을 연구하는데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가운데 양진당과 충효당은 보물로 지정된 특별한 건물이다. 하회마을을 완성한 대표인물이라 할 수 있는 조선 선조 때 유학자 류성룡의 집이 충효당이고 그의 형 류운룡의 집이 양진당이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고 서로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는 건물들이다.

 또한 하회마을은 옛 서민들의 놀이였던 <하회별신굿탈놀이>로도 유명하다. 별신굿에 쓰이던 탈들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제작 연대를 고려 시대로 추정하고 있어 마을의 역사가 뿌리 깊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보 12호로 지정된 하회탈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제 가면으로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양반, 선비, , 백정, 초랭이, 할미, 이매, 부네, 각시, 총각, 떡다리, 별채탈 등 12개와 동물 형상의 주지 2개가 있었다고 한다. 얼굴을 좌우로 비대칭적으로 만들어 표정이 고정되지 않도록 하였으며, 각 성격의 특성에 알맞은 표정을 짓도록 만들어졌다. 여러 개의 표정을 만들어내는 하회탈을 일러 탈이 신령스러워 탈 쓴 광대가 웃으면 탈도 따라 웃고, 광대가 화를 내면 탈도 따라 화를 낸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  

더할 수 없이 멋스러운 경치에 민속과 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하회마을은 우리나라의 정신 문화의 연구와 보존, 발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010 731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매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조선의 500년 시간과의 만남,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은 안강에서 형산강 줄기를 따라 포항 쪽으로 가는 도로에서 2㎞ 정도 들어간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 마을은 월성 손씨(月城孫氏)와 여강 이씨(驪江李氏)의 양대 문벌로 이어내려온 씨족마을이다. 마을의 시작은 손소(孫昭) 선생이 이 마을에 들어와 정착하고, 또한 손소 선생의 큰딸에게 장가를 왔던 이번(李蕃)이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후 500여 년을 두 가문이 양동마을에 안거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풍수지리상 재물 복이 많은 지형구조를 띠고 있으며, 마을 입구부터 제법 큰 양반 가옥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다. 기와집들은 종가일수록 높고 넓은 산등성이 터에 법도에 따라 배열돼 있다. 산과 계곡을 따라 펼쳐진 경관, 오랜 전통을 간직한 저택들, 양반 계층을 대표하는 많은 자료들을 보유하고 유교사상과 생활관습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양동마을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지만 특히 전통 가옥들이 눈길을 끈다. 양동마을의 중심인 손씨 종가인 서백당과 여강 이씨 대종가인 무첨당, 어머니에 대한 효심과 동생에 대한 우애가 서린 이언적(조선시대 성리학자)의 향단, 우재 손중돈(조선시대 학자)의 사가(
私家) 관가정, 독락당 등 독특하고 특색을 가진 건물들이 여럿 있다.

더욱이 이 건물들은 손씨와 이씨의 집안 간 경쟁관계가 만들어놓은 것이기에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은 것이 없다. 이씨 집안의 무첨당은 손씨 집안의 서백당에 대응해 지은 것이고, 손씨 대종가인 관가정이 세워지자 외척인 이언적이 입지를 마련하고자 지은 것이 향단이다. 원래 향단은 민가에서 가장 크게 지을 수 있는 최대치인 99칸이었으나 화재로 불타고 현재는 51칸의 단층 기와지붕으로 남아 있다.  

500년을 이어오며 소중하게 보존해온 양동마을. 조선시대 삶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이곳에는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 6개의 트레킹 코스가 있으며, 남산댁과 초원식당, 해저고택 海底古宅 10여 곳의 한옥집에서 민박도 가능하다.

海東周末
Copyright @2017 한중21. All rights reserved.

(주)무본/서울 아 04401/2017.3.6/한중21/발행인·편집인: 황혜선 서울특별시 중랑구 사가정로41길 6, 1층 101호 02-2215-0101/청소년보호책임자: 박정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