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명상 - 있는 모든 것 이외의 것의 이름, 있지 않을 무(無)

2022.09.27 16:03:10


유(有)를 알아야 무(無)를 알고,
무(無)를 알아야 유(有)를 안다.



 

무는 없다는 것이다.

없다는 것은 어찌 알까?

 

한자를 그런 무(無)를 표시했다.

그것도 상형자다.

도대체 어떤 모습에서 없다는 것을

있지 않다는 것을

표시할 수 있었을까?

 

사실 없다는 것은

있는 것을 다 알고,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아는 것이다.

 

있는 것들,

그 외 것이 바로 무(無)인 것이다.

 

있는 것을 빌어

없음을 아는 것이다.

 

사실 갑골자의 무(無)가 그렇다.

춤을 추는 모습이다.

춤을 추며 손에 든 것을

몸에 부착한 것을

모두 보여주는 게 바로 무(無)다.

 

 

춤이라는 의미의 무(舞)가 생기면서

없을 무(無)와 구분됐지만

없을 무(無)나

춤출 무(舞)나

본래 하나의 글자였다.

 

없다는 것은 있다는 것을

다 보여준 뒤야

비로소 알게 된다.

내 곁에 무엇이 없는지를 ….

 

갑골자 무는 그렇게

실제론 가차자다.

춤 무(舞)를 빌어 없을 (無)로 썼다.

있음을 빌어

없음을 표기한 것이다.

 

“遥知兄弟登高处, 遍插茱萸少一人。”

(요지형제등고처, 편차수유소일인)

“저 멀리 형제들 산에 올랐겠지.

그리고

돌아가며 수유나무 가지를 머리에 꽂다

그 때 비로소

다시 알겠지. 내가 자리에 없음을 ….”

 

당나라 시인 왕유의 시 한 구절이다.

중양절 산에 올라 수유나무 가지를 머리에 꽂는 풍습을 견줘

형제애를 그렸다.

 

수유나무는 항상 준비하는 것이다.

있는 것이다.

그 수유나무를 형제들에게 나눠주다

문뜩 새롭게 안다.

나 우리 형제 왕유가

이 자리에 없구나.

 

있었기에,

있기에

비로소 아는 것이다.

이제 없다는 것을 ….

 

 



황혜선 hhs@kochin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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