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명상 - 청(靑), 푸르다는 것에 대하여

  • 등록 2022.02.04 11: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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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은 맑음이다.

푸름을 비춰

더 푸르게 하는 맑음이다.

그게 푸를 청(靑)이다.

 

글자의 뜻이 그렇다.

우물이 비춘

푸른 나무가

바로 푸를 청이다.

 

푸름, 푸르름에 대한

인간의 첫 연의(演義)다.

 

푸르다는 것에 대한

가장 원초적이고

철학적인 답이다.

 

푸를 청은 그래서

인문학적, 인식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담고 있다.

 

왜 푸른 나무로

푸름을 표현하지 않았을까?

 

왜 맑은 물에서

푸름을 봤을까?

 

왜 물은 푸름을 비춰

더 푸르게 하는 것일까?

 

사실 푸른 색을

검은 글자로

표시하는 유일한 길이

연역이다.

부연해 설명하는 것이다.

 

맑은 물에 비친 푸른 나무.

 

수많은 질문과 그 답을

담은 글자가

바로 푸를 청이다.

 

청(靑)은 그래서

시작이다.

맑음과 푸름

그 관계의

시작이다.

푸름에 대한 첫 비춤이요,

인식이다.

 

일본의 한 학자는

그래서

푸를 청을 농경의 의식으로 봤다.

농사를 시작하는

계절, 봄에

농기구를 피로 씻어내고

다시 그 피를

맑은 물로 씻어내는

과정이라고 했다.

 

삶을 이어가는

원동력, 농사의 시작을

푸를 청이라 본 것이다.

 

어쨌든 청은 그래서

관계로 이뤄진

삶의 시작이다.

 

그래서 청춘은

푸르다.

비춤의 첫 봄이다.

 

청년은 푸른 나이다.

주변의 푸름을 비춰

더욱 푸르게 되는 나이다.

사회를 비춰

스스로 더욱 푸르게 된다.

 

황혜선 hhs@kochin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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