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고산 절벽에 자란 고송(孤松)은 아름답다.
직각의 가파른 절벽에 붙어 뿌리를 내리고 조금이라도 더 빛을 받으려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자란 ‘기형의 몸’이지만 아름답다.
살려했고, 살아남아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살아남아 그 어떤 키 큰 소나무보다 더 멀리 보고, 더 태양과 가깝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살고자 하는 뜻을 이뤘기에, 매일의 일출이, 석양이 새로운 것이다.
살고자 하는 뜻을 이뤘기에, 기형의 몸이 저 아래 평범한 언덕 위에서 하늘로 쭉쭉 벋은 자태를 자랑하는 어떤 소나무보다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 뜻이 드물기에 귀한 것이다.
뜻 지(志)는 이렇게 마음이 그쳐 머무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선비 사(士) 아래 마음 심(心)을 쓰지만 본래 뜻 지는 그칠지(止) 아래 마음 심을 썼다.
마음이 그친 곳이 바로 뜻인 것이다.
마음이 그쳐 변치 않는 곳이 바로 뜻인 것이다.
그런데 묘한 게 마음이란 존재다.
내 것인데,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내 맘인데 남의 뜻만 따른다.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게 마음인데,
주머니 돌보다 가볍게 주어지는 게 맘이다.
또 이미 줬다 싶은 데 다시 돌아와 있는 것도 맘이다.
그래서 이백은 아무리 정숙한 여인이라도 봄바람에 슬쩍 마음이 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노래했다.
春风不相识, 何事入罗帏?
이 봄바람,
난 알지도 못하는데,
무슨 일로
내 방 창에 들어올까?
다 마음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물러 뜻으로 응고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그쳐 뜻이 되면, 절로 결연해진다. 삶의 모든 것이 그 뜻으로 귀결된다.
자신의 모든 것이 그 뜻에 달리게 된다.
전국시대 연나라 태자 단(丹)과 진시황을 암살키로 하고 길을 떠나는 자객 형가는 이렇게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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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불고, 강물은 차갑기만 하구나. 내 오늘 떠나면 살아 돌아오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