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두 천재 시인이 함께(?) 쓴 시 '영은사'

2023.08.29 17:19:59

 

楼观沧海日 门对浙江潮

lóu guān cāng hǎi rì  mén duì zhè jiāng cháo 

 

누각 저 멀리

푸른 바다 해 보이고

문 너머

저장의 파도소리 들리네.

 

 

당나라 시인 송지문(宋之問, 656~710)의 시 '영은사(灵隐寺)'의 한 구절이다.

번역을 하면 맛이 떨어진다 싶을 정도로 한자의 쓰임이 절묘하다. 눈에 보이는 해의 경치와 들리는 파도 소리를 절묘하게 대비시켰다. 그런데 보는 것도 관(觀)이며 그 대비가 들리는 문(聞)이나 아니라 대응해 오는 대(對)이다. 소리를 마치 보는 듯 표현해 의미적 대비를 살리면서 성조의 대비로 운율도 살렸다. 읽으면 읽을수록 맛나는 구절이다.

 

이 시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당대 두 천재 시인이 동시에 등장한다. 송지문과 낙빈왕(骆宾王, 626~687)이 두 주인공이다.

영은사는 한 고승이 저장성 항저우 북서쪽에 있는 한 산을 두고 "아 언제 천축의 산이 이리 날아왔던가? 부처의 영이 숨겨진 곳이로구나"라고 평가해 이를 기념해 지어진 절이다. 한마디로 경치가 매우 빼어나다는 의미다.

 

어느날 송지문이 영은사에 머물며 시를 지었는데 첫 구절이 "높은 봉우리 수풀 우거지고, 문 닫힌 용궁은 적막하기만 하네(鹫岭郁岧峣, 龙宫锁寂寥, jiù lǐng yù tiáo yáo , lóng gōng suǒ jì liáo)"였다.

여기서 용궁은 용왕이 부처의 설법을 들었다는 곳으로 영은사를 의미한다. 송지문은 이 구절을 지어 놓고 반나절 넘도록 고심을 했지만 그 다음 구절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고심하며 절의 회랑을 왔다갔다 하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었다. 이 때 홀연 송지문의 뒤편에서 노승의 목소리가 들렸다. "楼观沧海日 门对浙江潮" 송지문이 손뼉을 치며 고개를 숙여 고마워했다. 그리고 시 '영은사'의 전체를 다 써내려갔다.

 

다음날 아침 늦게 일어난 송지문은 자신에게 시 구절을 알려준 고승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미 절을 떠난 뒤였다. 뒤늦게 고승의 신분을 확인하니 그가 바로 낙빈왕이었다. 결국 시 '영은사'는 낙빈왕의 도움으로 완성된 셈이다.

대다수 역사가들은 이 고사를 사실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다. 고의적으로 송지문을 폄하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송지문 역시 어려서부터 시 천재로 소문났던 인물이다. 단지 그는 당나라 역사에 기록될 정도로 아첨하길 좋아했고 품행이 나빴다. 그의 시는 아름답고, 규칙을 잘 지키기로 유명하지만 대체로 황제나 권력자의 요청에 의해 지어진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는 시 구절까지 남의 것을 훔치려 했다는 의심을 받은 것이다. 사실 송지문이 시구를 훔치려 했다는 고사는 이뿐만 아니다. 어쨌든 당나라 초기 두 천재 시인이 머리를 맞대 지었다는 이 고사는 '영은사'가 얼마나 좋은 시인지 보여주는 방증인 셈이다.

 

 

 

황혜선 hhs@kochin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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