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5 (화)

  • 구름많음동두천 -6.5℃
  • 구름조금강릉 -2.8℃
  • 서울 -4.2℃
  • 구름조금대전 -0.7℃
  • 맑음대구 -1.7℃
  • 구름조금울산 1.0℃
  • 박무광주 1.4℃
  • 구름조금부산 3.5℃
  • 흐림고창 1.7℃
  • 제주 8.8℃
  • 구름조금강화 -5.5℃
  • 맑음보은 -0.5℃
  • 흐림금산 0.9℃
  • 맑음강진군 3.8℃
  • 맑음경주시 -4.7℃
  • 구름조금거제 0.5℃
기상청 제공

신중국건국공신

中 항미원조전쟁 70주년기획⑦ 인민지원군 참전, 북진이 중단되고 후퇴가시작되다.

URL복사

 

 

북진하던 한국군 가운데 가장 먼저, 그리고 유일하게 압록강변까지 북상했던 6사단 7연대는, 1950년 10월 29일 남하를 시작한 그날 하룻만에 중국인민지원군의 매복과 습격을 당해 참담한 패배를 겪었다.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약 700명이 포로가 되었다.

 

이 700명의 포로가운데는 7연대의 미군 군사고문 플레밍 소령도 끼어 있었다.

 

전사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플레밍 고문은 15군데 총상을 입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3년 후인 1953년 가을, 포로 교환때 까지 생존해 있다가 플려나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군 6사단은 중국인민지원군의 첫번째 공격대상이 된 사단이었다.

 

6사단은 공격을 당한지 3일만에 7연대는 물론이고 2연대와 19연대까지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한국군 6사단의 뜻하지 않은 급작스런 와해는, 평안도 지역 전역, 즉 서부전선을 담당하고 있던 미8군의 오른쪽 전선이 심각하게 약화돼 붕괴되는 전조였다.

 

이후 6사단은 재정비되어 전선에 다시 투입돼, 휴전때 까지 전투를 계속했다.

 

 

한편 북진의 선봉인 한국군 6사단에 큰 타격을 줬던 인민지원군 353연대를 이끈 사람은 황더마오(黃德懋·1919~2013) 연대장이었다.

 

그는 산둥(山東)성 셔우광(壽光) 출신으로, 19살때인 1938년 1월 팔로군에 입대했다. 항일전쟁때는 산둥성에서 복무했다.

 

1945년 8월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인한 철수 이후, 국민당과의 국공내전이 다시 시작되면서, 황더마오는 동북지방의 만주전선으로 배속된다.

 

그는 이후 인민해방군 총사령관까지 올라간 린뱌오(林彪) 휘하에서, 신중국이 건국될때인 1949년 10월까지, 제4야전군 제40군에 배속돼 제118사단의 제353연대장까지 승진했다.

 

일년 후인 1950년 10월, 항미원조(抗美援朝)에 선봉부대인 제 40군 118사단의 연대장으로 초기부터 참전했다.

 

항미원조전쟁 기간동안 118사단의 부사단장까지 역임했다.

 

전쟁후 중국인민해방군에 계급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때인 1955년에  상교(上校·대령과 중령 사이) 계급을 수여받았고 1962년 대교(大校·대령)로 진급했다.

 

이후 1978년 입대 40년 만인 59살에 소장 (원스타) 으로 장성계급장을 달고 인민해방군 쿤밍(昆明)군구 부사령관가  군구 당위원회 상무위원을 지냈다.

 

2013년 베이징에서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