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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국건국공신

中 항미원조전쟁 70주년기획 ④ 전쟁개시 기념일이 된 제118사단의 첫 전투 승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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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항미원조전쟁 70주년기획

 

제 4화. 1950년 10월 25일 인민지원군 40군 118사단 평북 온정리 첫 전투에서 승리

 

 

10월 25일 원위청 (溫玉成)이 이끄는 중국인민지원군 제40군의 공격으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 시작됐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40군 예하 118사단이 그 서막을 열었고, 지휘관 덩웨가 승리로 이끌었다.

 

 

당시 32세의 덩웨(鄧岳)는 118사단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어 평안북도 희천(熙川) 북쪽 지역인 대유동(大楡洞)에 도착했다.

 

행군을 하면서 그의 부대는 참혹한 광경들을 목격했다.

 

한국군에 총살되어 들판이나 길가에 널브러져 있는 조선 노동당원, 민청맹원, 여맹원그리고 일반 촌민들의 사체들을 보았다.

 

미군 폭격으로 집이란 집은 모두 부셔져 있었고, 폐허가 된 곳곳에서 고아가 된 어린아이들이 울고 있었다.

 

대유동은 후에 지원군 총사령부 소재지가 된다. 그 곳에서 덩웨는 중국인민지원군의 총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를 만났다. 펑더화이는 덩웨에게 평북 운산군 온정(溫井)으로 이동해 유리한 지형을 선점한 후 포위망을 형성하라고 명령했다.

 

 

펑더화이는 명령을 하달하면서 "이것은 인민지원군의 첫번째 전투"라며, 필승을 요구했다. 덩웨의 118사단은 즉각 온정 쪽으로 이동했다.

 

10월 25일 새벽, 118사단 정찰중대는 온정 북쪽의 양수동(兩水洞)에서 한국군 6사단 2연대 3대대와 조우했다.

 

소규모 전투가 발생했다. 높은 위치에 있었던 118사단은 기습 맹공을 퍼부었다. 전투는 20분 만에 끝났다. 큰 피해를 입은 한국군 3대대는 후퇴했다.

 

 

이 소식은 온정에 주둔중인 한국군 6사단 2연대 본부로 전해졌다. 연대 본부는 2대대를 지원 병력으로 보냈으나 가는 길에 매복에 걸려 2대대가 궤멸되면서 지원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이어 118사단은 온정 점령을 위한 전투를 본격적으로 개시했다. 118사단 휘하의 3개 연대 가운데 1개 연대는 온정의 한국군 6사단 2연대를 공격했고, 1개 연대는 희천 방면에서 오는 한국군을 저지했다.

 

나머지 1개 연대는 운산 방면에서 오는 한국군을 막는 동시에 6사단 2연대의 퇴로를 차단했다.

 

118사단은 120사단의 협력 하에 양 측면에서 한국군 6사단 2연대를 협공했다, 3시간 정도의 격전이었다. 전투는 지원군의 승리로 끝났다. ’온정 전투’는 규모는 작었지만 지원군의 첫번째 교전이었다. 그 후 10월 25일은 지원군의 참전기념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