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8 (토)

  • 구름많음동두천 -2.3℃
  • 흐림강릉 2.7℃
  • 구름많음서울 -1.0℃
  • 흐림대전 2.5℃
  • 구름많음대구 3.2℃
  • 구름많음울산 3.2℃
  • 흐림광주 4.1℃
  • 맑음부산 4.5℃
  • 구름조금고창 3.2℃
  • 흐림제주 8.1℃
  • 흐림강화 -1.2℃
  • 흐림보은 0.7℃
  • 흐림금산 2.0℃
  • 흐림강진군 4.6℃
  • 흐림경주시 3.4℃
  • 맑음거제 5.5℃
기상청 제공

중국역사

" 중국이 가난하니까 중국인이 차별받는다." 쑹자수 이야기 3

중국국모 송경령의 아버지, 쑹자수 인생시리즈 3

URL복사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만난 목사의 도움아래, 어느덧 영어에 자신을 가지게 된 1881년,  만 20세가 된 쑹자슈는 미 남부의 가장 유명한 대학에 입학을 한다.

 

듀크대학이다. 노력한 덕에 장학금도 받는다.

 

 

당사 쑹자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이 바로 링컨의 삼민주의였다고 한다.

 

듀크 대학에서 쑹자수는 미국에서 막 탄생한 민주주의에 훈도된다. 하지만 이때 쑹자수 가난하고 약해 서구의 식민지로 전락한 청나라의 사람으로서,  민족의식을 새롭게 인식한다.

 

바로 이때 미국에서도 중국 화교들이 인종 탄압을 강하게 받기 시작하던 때다. 중국인 거리에서 중국인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테러가 백주에도 자행됐고,  심지어 공장에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살해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쑹자수는 분노했다. 하지만 약소국 국민의 설움은 분노한다고 풀어지는 게 아니었다.

 

“조국이 더 강해져야 한다. 그래야 해외에서 이런 설움을 받지 않는다.”

 

청년 쑹자수의 가슴에 핀 생각이었다.

 

 

쑹자수는 1882년 소망했던 신학대에 입학해 1885년 학위를 마친다.

 

학위를 마친 쑹자수가 중국에 돌아온 것은 1886년 1월의 일이었다.

 

돌아온 쑹자수는 당당한 미국 신학대를 졸업한 목사의 신분이었다. 쑹자수는 상하이에서 미 남부 감리교회 전도사 직을 맡았다. 상하이 쑤저우 등지의 전도를 책임지는 자리였다. 그와 함께 교회 학교의 교사 역도 맡았다.

 

이때 배출된 가장 유명한 학생이 바로 훗날 중국 교육부 장관을 역임한 후스다.

 

당시 미국에서 목사는 대단히 존중을 받는 직업이었다. 본래 미국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난 이들의 나라였다.

 

신앙 하나로 고향을 떠나 먼 식민지의 농토를 개척한 게 초기 미국 정착민이다.

 

쑹자수는 중국인으로서 미국 신학대학을 정식으로 졸업한 첫 번째 중국인 목사였던 것이다.

 

그 보기 드문 경력은 중국에서 상상하기 힘든 작용을 한다.

 

중국을 유린한 당대 최 강대국인 미국, 유럽 국가의 주요 인물들과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했고, 게다가 그 서양인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점는, 당시 이루 말할 수 없는 특별한 재능이면서 당연히 특권처럼 인식되었다.

 

중국인에게 쑹자수는, 같은 민족으로서 믿을 서양인과의 대화 통로였고, 미국 등 서구인들에게는 중국과 통할 수 있는 가장 믿을 수 있는 목사였다.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내며 돈을 벌기 위해 부모와 생이별을 선택했던 쑹자수가 이런 특별한 기회를 놓칠 리 만무했다.

 

쑹자수는 자신에게 주어진 천재일우의 기회를 십분 활용했다.

 

이제 바야흐로 쏭자수는,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에서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