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칼"
책의 제목이 아니다. 한 나라의 실력을 가늠케하는 실질적인 힘이다. 권력의 핵심이다. 돈이 있어야 국민이 살고, 칼이 있어야 나라가 지켜진다.
작금의 세태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너무 노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이웃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행태가, 남미 일국의 대통령을 무력으로 체포하고 이란을 공격한 미국의 행태가 그렇다.
그들에게 돈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칼이 모자랐다. 아니 돈도 모자랐다. 정확히 '금력'이 모자랐다. 금력은 각종 부정과 부패로 창고에 쌓아 놓은 현금이나 금은보화가 아니다.
그 것보다 돈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한국의 삼성, SK하이닉스가 금력의 상징이다. '반도체'라는 글로벌 사회 가장 중요한 돈줄을 만들어내는 회사들이다.
이런 게 없으면 나라가 처량해지고, 백성이 궁핍해진다.
지난 1930년대에서 60년대 초반까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이 같은 처지였다. 유독 일본이 돈은 있었지만 세계 2차 대전 패전국이 되면서 '칼'이 없었다.
중국의 근대 현인으로 꼽히는 펑유란은 이 같은 점을 명쾌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펑유란(冯友兰·사진;1895 12 04~1990. 11. 26)은 동양의 사상을 집대성한 '동양철학사'를 쓴 인물이다. 한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읽고 감명했다고 해 화제가 됐었다.
펑유란의 책은 중국 본토인이 읽어도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펑유란의 책은 백화문 초기의 글로 고전의 형태를 아직 유지하고 있다.
고전은 분래 짧은 문장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전고를 모르거나 관용적 표현을 모르면 오독할 우려가 크다.
'돈과 칼'과 관련한 펑유란의 고사는 펑유란이 미국 유학중에 일어났다.
한번은 지인인 두웨이(杜威) 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신문을 보다 한 기사를 지적을 한다. 쑨원(孫文: 1866~1925)과 장쭤린(張作霖: 1875~1928)이 합작을 한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기사를 보는 펑에게 지인인 두가 말했다. “역사에 수많은 전투에서 보듯 실력이라는 게 무엇인가? 본래부터 두 종 아닌가? 하나가 칼이요, 다른 하나는 돈이지. 손문 선생이 이렇게 군벌들과 손을 잡으려는 것도 이상의 실현을 위해 돈과 칼이 손잡도록 하려는 것 아닌가?”
이에 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돈이 있고, 칼도 있고. 그래서지난 1927년 북벌의 승리가 가능했던 것이지!”
그렇다. 북벌을 가능케 한 것은 쑨원의 힘이 아니다. '돈과 칼'의 힘이다. 쑨운은 그 돈과 칼이 모이도록 한 것이다. 그게 쑨원의 능력이다.
문뜩 일런 머스크가 생각난다. 일런 머스크는 과학자도 아니다. 과학을 바탕으로 꿈을 꾸며 그 꿈을 팔아 돈을 모은다. 최근 스페이스X의 기업 공개 실적을 보면 그 재주의 비범함이 천고의 일학이다.
우리의 쑨원, 일런 머스크는 누굴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