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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도박왕 스탠리 호 사망, 홍콩서방식민시대 마감의 상징성

스탠리 호 4대 조부터의 축재의 흑역사.

 

 

지난 달 26일, 중국의 유일한 도박장인 '마카오의 도박왕' 이라 불리던 허홍션(何鸿燊)이 약 15조원의 유산을 남기고 사망했다. 향년 98세 

 

무척 장수한 것같지만 2009년 87세때 노환으로 쓰러진뒤 강심제등 약으로 연명하다 사망했다

 

허홍션은 포루투칼의 식민지였던 마카오의 도박왕으로 영어명 '스탠리 호' 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이제 중국의, 아니 홍콩의 호사가들은, 허홍션의 부인이 4명에다, 자식이 17명, 거기에 누나형제 그리고 조카들까지 수십 수백명에 이르는 친인척들간에 벌어질 유산배분의 진풍경을 흥미진진해하는 분위기다.

 

왜냐하면, 도박왕 스탠리 호가 누린 부의 모든 것이, 홍콩과 마카오의 식민지초기 유럽에서 건너온 영국국적의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때부터 만들어 진 것이기 때문이다.

 

스탠리 호의 죽음은 말하자면 홍콩인과 중국인들에게, 비운의 과거 식민지역사가 청산되는 상징적인 사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간략하게 기술하겠지만, 먼저 독자들의 사전 이해를 돕기위해, 한국의 식민지역사에다 기간을 늘이고 여러 가정을 섞어, 스탠리 호같은 '제주도의 도박왕' 얘기를 비유해 쉽게 풀어보자는 것이다.

 

즉 일찌감치 서양대포를 들여와 무력을 키운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히로뽕으로 제공하면서 조선의 특산품들을 사가다가, 아예 홍콩의 아편전쟁처럼 히로뽕 전쟁을 벌여 1842년 조선반도를 점령하고제주도를 157년 간 식민지로 할양받았다고 가정해 본다.

 

이 시기에, 일본군부와 친하던 일본인 사업가 한 명이 조선에 들어와 조선여성와 결혼도 하고 총독부와 관계를 바탕으로 사업도 벌여 혼혈인 2대 아들때에는 조선땅 최고의 일본인 부자가문이 되었고 3대 4대가 번창하던 중,

 

그 일본인 4대 증손자가 40살이 되었던 1961년에,  2대 할아버지와 3대 아버지와 삼촌들이 평생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일본 군부에게 식민지 섬 제주도에 카지노사업을 들여오자고 제안해 제주도를 도박특구로 지정하게 한다.

 

그러면서, 도박은 관리를 잘해야하는 위험한 사업인데다 상납도 확실해야 한다고 솔깃하게 한 다음, 한 사람(회사)에게 독점적으로 권리를 주는 방향으로 사업계획서을 만들고, 미리 합의한 4대 증손자가 제주도 도박영업의 전권을 받을 수 있게 한다.넘기게 하고, 제주도를 도박특구로 지정한다.

 

할아버지와 삼촌들의 치밀한 안배와 여전한 배경에 힘입어, 그 4대 일본인 증손은 물려받은 재산으로 제주도에 카지노호텔을 짓고, 조선본토는 물론 일본 대만 필리핀등 카지노가 금지된 이웃외국에서 관광객이 물밀처럼 들어오면서, 돈을 긁어 모은다.

 

제주도의 카지노사업을 독점한 이 일본인 가문 특히 4대 일본인 증손은 넘치는 돈으로, 조선본토여성, 미스제주 일본 여성 등 부인을 4명씩 두고 자식을 17명이나 낳고 호강한다.

 

그러다 1997년 제주도 할양기간이 끝나는 관계로 한국으로 제주도를 돌려줬으나, 그 동안 제주도의일본카지노 가문의 재산은 그대로 지켜진다고 만들어진 반환협정에 의해 온전히 이 일본인 가문에 남는다.

 

일본인 4대는, 제주도의 한국으로의 반환시점이 점차 도래하던 시기에, 베트남 일본 북한 필리핀에까지 카지노사업을 진출시켜 아시아의 카지노 대제국을 이루고 98세 때까지살다가, 2020년 5월 26일 사망한다.

 

이번에 사망한 스탠리 호의 일생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가상 시나리오상의 일본인 4대의 일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스탠리 호의 4대 조인 영국국적인 증조할아버지 ( 중국자료에 의하면 네델란드계 유태인이었고 홍콩에 들어 올때 영국국적으로 입국했다고 한다) 가, 1842년 아편전쟁과 난징조약에 의해 홍콩이 영국식민지가 되고 난 후인 1859년 홍콩에 들어와, 광동성출신의 중국인 여성과 결혼한다.

 

4대조가 벌였던 사업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나와있지 않다.

 

당시 영국등 유럽에서 금가루보다 더 비쌌다는 중국대륙의 차와 자기로 된 식기 도기 등등의 중국특산품의 무역을 독점(?)했을 것이라는 상상은 어렵지 않다.

 

 

영국이 홍콩을 식민지배했던 초기 , 이  4대 조의 증조할아버지가 무역사업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기초를 잘 닦아 놓았던지.  그 다음 세대인 3대 조의 장남인 허치동( 何启东 )은 , 당시 홍콩 최고의 부자였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차남인  허치푸(  何启福 )는 영국왕실로 부터 작위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 허치푸

 

중국기록들은 또 이들 형제들이, 청나라 멸망직전이었던 1900년 경부터, 청나라 땅을 실질적으로 나눠 지배했던 각 지방의 유력한 지방군벌들과 교류를 해왔다고 적고 있다.

 

즉 지방을 무력으로 장악한 군벌들은 자신의 점령지역에서 빼앗은 차와 자기등을 이 영국사업가에게 넘겨주고, 그 댓가로 지역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무기와 자금을 마련했던 것이다.

 

홍콩의 이 영국사업가 형제들은 군벌과의 이런 중계무역을 독점하다시피하면서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중국기록은 또 이들 형제들이 당시 중국역사상 3대인물이라는 쑨종샨 ( 孙中山) 캉유웨이 (康有为) 장제스 (蒋介石) 들과도 형제같은 사이였다고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이 위 3인의 정치자금줄이었다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렇게 중국대륙의 혼란기 초기부터 부를 증식해왔던 홍콩의 영국인 2대 허씨형제와 3대 허씨형제들은, 이후 1949년 신중국성립 때까지, 중일전쟁 그리고 이어진 공산당과 국민당군의 내전의 기회를 통해, 어마어마한 피묻은 돈( Blood Money)을 벌 수있는 축복의 시기를 누렸다.

 

신중국성립후 약 10년정도 별다른 새로운 돈줄을 찾지 못했던 홍콩의 영국인 허씨집안은, 1961년 기막힌 사업의 묘수를 착안해 낸다. 

 

홍콩의 영국인 사업가 허씨 집안의 4대손인 스탠리 호가 40세였을 때의 일이다.

 

허씨 집안은 바로 홍콩 옆의 포루투칼 식민지인 마카오를 노렸다.

 

당시 포루투칼은 1932년대부터 교수출신독재자 살라자르 (António de Oliveira Salazar)총리가 30년 가까이 철권독재를 자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홍콩에 비해 형편없이 낙후된 마카오식민지에  라스베가스의 카지노사업을 도입해, 포루투칼의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독재자 살라자르에게 접근해, 마카오카지노사업개발의 독점권을 따내기에 이른다.

 

 

스탠리 호는 집안의 사촌형제들과의 협업으로, 포루투칼의 수도 리스본의 이름을 딴 Hotel Lisboa ( 澳门葡京酒店 )라는 아시아 최초의 초호화카지노호텔을 1970년 개장한다.

 

스탠리 호 에게 마카오의 카지노 독점권을 넘겼던 살라자르는 Hotel Lisboa 의 개장을 보지 못하고 1968년 죽었다.

 

마카오 카지노 개장이후 미국과 유럽 그리고 아시아에서 온  홍콩관광객들에게 마카오관광은 필수코스였다.

 

마카오에 대한 포루투칼의 식민지배는 홍콩보다 약 2년 반뒤인 1999년 12월 20일 끊났다.

 

그와 함께 스탠리 호의 마카오 카지노 독점권도 사라졌다.

 

그렇지만 지난 30년동안 카지노독점권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던 스탠리 호는, 베트남 필리핀북한으로 까지 카지노사업을 진출시켜, 마카오대부가 아니라 아시아카지노의 대부로 발전 나갔다.

 

1999년 12월 마카오의 중국회귀 이후, 마카오 카지노업계에는, 미국 호텔업계등 세계의 자본들이 카지노투자을 계속하면서, 스탠리 호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듯 했다.

 

 

그런데 지난 2015년에 마카오 중심가, 오리지널 호텔 리스보아 바로 뒷쪽에 58층짜리 황금색 불꽃형상의 뉴 리스보아 카지노호텔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20세기 포루투칼의 마카오에서도 스탠리 호가 최고였듯이, 21세기 중국의 마카오에서도 스탠리 호가 영원한 카지노의 대부라는 것을 알리는 듯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