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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국건국공신



1969년 65세의 덩샤오핑은 강제 노동을 위해 장시에 도착한다.

눈을 가린 채 이동을 했지만

덩샤오핑과 그의 의모와 부인 줘린은 강제 이주 된 곳이 장시임을 금방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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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덩샤오핑은 본래 장시와 인연이 깊다.

덩샤오핑은 실각과 입각을 반복하면서 ‘오뚝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덩샤오핑이 첫 번째 실각으로 강제 노동을 한 곳이 바로 장시다.

 

때는 1933년의 일이다.

그 해 5월 29세이던 덩샤오핑은

당내 모든 직위를 박탈당한 채 장시로 강제 이주된다.

당시 중국 공산당은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한 세력과

기존 당권 세력이 향후 투쟁 노선을 놓고 권력 다툼을 벌일 때였다.

 

덩샤오핑은 마오 편을 들었고,

마오 등 4인의 ‘마오파 4인방’에 포함됐다.

투쟁에서 실각했고 강제 노동을 하게 된다.

 

묘하게 그 뒤 33년이 지난 1969년

덩샤오핑은 다시 실각해 장시에 오게 된 것이다.

이번에 그를 실각시킨 인물은 다름 아닌 마오쩌둥이었다.

한 번은 마오를 위해서, 다른 한 번은 마오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덩샤오핑은 장시를 두 번 찾게 된 셈이다.

 

마오쩌둥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덩샤오핑은 장시에서 노동을 하던 중 기회를 봐 친필 편지를 써 마오에게 보낸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국가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복권을 희망하는 편지였다.

여기에 마오는 분명히 1933년의 일을 기억해 기록을 한다.

덩샤오핑의 편지 위에 마오는 “덩은 1933년 마오파 4인방의 하나로 장시에서 강제노동을 했다"라고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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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장시의 인연이 다시 덩샤오핑을 살린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당장 장시에서 덩샤오핑은 철저한 감시 속에 생활해야 했다.

덩샤오핑에게 떨어진 강제 노동은 트랙터 공장에서 조립공으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덩샤오핑은 프랑스 공장의 공원으로 일을 한 적 있다.

그래서 조립공 일은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을 하는 동안 덩샤오핑은 의자 잠시도 앉아 쉴 수가 없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줘린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인젠 현에서 노동을 할 때는 매일 공장에 출근했다. 아침 8시에 집을 떠나서 30분을 걸어야 트랙터 제조 공장에 도착한다.

오전에 나는 코일을 풀고, 샤오핑은 조립공정을 담당했다.

나는 그나마 의자에 앉아서 노동자들과 얘기도 하면서 일을 할 수 있지만

그는 오전 내내 계속 서서 일해야 했다.

어느 날, 샤오핑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서 잠깐이라도 쉬라고 했지만

그는 한번 앉으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다고 하면서 일을 계속했다.

남편의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수없이 복잡한 상념과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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