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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국건국공신

하늘은 먼저 그 사람의 뜻부터 단련시킨다.

덩샤오핑과 문화대혁명

덩샤오핑의 몰락은 빨랐다.

 

1966년 5월 문화대혁명 발발 직후 불과 1년이 지나지 않았다. 덩샤오핑은 당적만 보존한 채 모든 당무에서 쫓겨난다.

 

“정신 개조부터 하라”

 

당의, 아니 마오쩌둥의 명령이었다. 공식적으로 덩샤오핑은 1969년부터 1973년까지 4년간의 노동 개조를 받는다.

 

부총리에서 하루아침에 공장 노동자로 전락한 것이다.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것, 이백을 적선(謫仙)이라고 하면 덩샤오핑은 적관(謫官)이 된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인 당직을 보존한 것이다. 중국은 공산당 천하다. 그 공산당에 쫓겨난다는 것은 천하에서 쫓겨난다는 의미다.

하지만 당시 누가 있어 덩샤오핑의 복권을 예측했을까?

 

오죽 눈앞에 고난을 어떻게 이겨내느냐는 게 더욱 시급한 문제였다.

 

 

 

당사에 따르면 이 문제를 가장 고민한 인물이 저우언라이 총리다. 그는 당시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속에 자신을 보존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덩샤오핑을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한다. 무엇보다 덩샤오핑을 위해 지방 정부에 전화를 한다.

 

“덩샤오핑 동지가 내려가 노동지를 함부로 하지 마시오. 그는 잠시 지방 현지를 살피러 가는 것이오.”

 

당대 총리의 이 같은 전화를 받고 직전 부총리였던 인물을 박대할 이는 없었을 것이다.

 

 

가족들의 덩샤오핑에 대한 회고를 적은 책 ‘나는 중국 인민의 아들’이다‘에서 1969년 10월 어느 날 덩샤오핑의 아내 줘린은 중난하이 저택에서 쫓겨나던 순간을 이렇게 회고한다. 덩샤오핑은 문화대혁명 발발 이래 가택연금 상태였고 이 순간 자녀들의 방문도 금지된 상태였다. 당시 덩샤오핑의 집에는 5살 위인 계모 샤보건과 아내 3 노인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누가 와서 덩샤오핑과 어머니의 짐을 싸서 비행기를 타라고 전했어요. 덩샤오핑이 평소 보던 책 몇 상자를 정리해 짐을 싸 들고 황망하게 차에 올랐습니다. 비행장으로 가는 차는 커튼으로 밖을 볼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장시의 신전현 보병학교입니다.”

 

당사 기록에 따르면 이 가족에게는 비서가 배당됐다. 말이 비서이지, 실제는 덩샤오핑 일가를 감시하는 이었다. 그리고 가족은 철저히 외부 접촉이 금지됐다. 식사 등의 모든 생활을 노인 3명이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그렇게 내일이 보이지 않는 생활을 덩샤오핑은 시작하게 된다.

 

박청로 기자 parkchungro@kochin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