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30 (토)

  • 맑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16.7℃
  • 구름많음서울 20.0℃
  • 구름많음대전 20.4℃
  • 구름많음대구 19.4℃
  • 구름많음울산 16.4℃
  • 흐림광주 20.6℃
  • 구름많음부산 18.2℃
  • 흐림고창 17.5℃
  • 흐림제주 18.7℃
  • 맑음강화 14.8℃
  • 구름많음보은 16.6℃
  • 흐림금산 17.5℃
  • 흐림강진군 18.1℃
  • 구름많음경주시 16.4℃
  • 흐림거제 17.2℃
기상청 제공

신중국건국공신

"난 투항파가 아니다."

저우언라이 최종회

1975년 저우언라이의 병세는 갈수록 짙어졌다. 9월까지 이미 3차례의 수술을 했다. 암은 치료되지 않았고, 갈수록 전이의 부위를 넓혀갈 뿐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정세는 저우언라이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덩샤오핑의 노력으로 문혁의 오류를 바로 잡고, 경제 상황이 호전됐지만 마오쩌둥의 다시 덩샤오핑의 정책들로 인한 우경화를 우려하는 ‘반우경화바람 운동’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의 극좌 운동은 사상운동이었다. 이 운동을 문화대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문화로 상징되는 정신을 극좌로 바꾸겠다는 마오쩌둥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문화대혁명의 시작이 ‘해서파관’이라는 연극에 대한 비판이었듯, 문혁시기 최후의 극좌 운동 역시 중국 고전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다.

1975년 시작된 ‘<수호>를 평하고, 송강을 비판한다’ 운동이 그것이다. 마오쩌둥은 일찍이 연안시기 수호전을 극찬한 적이 있다. “양산박의 기인들은 현실에 쫓겨 산에 올라 도적이 됐다. 우리는 현실에 부패에 쫓겨 산에 올라 유격전을 벌인다” 바로 마오쩌둥이 수호전을 읽고 한 말이었다.

그런 마오쩌둥이 1975년 수호전의 송강을 비판한다. 현실에 반한 것은 사실이지만, 왕정에 반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문혁의 발단이 됐던 ‘해서파관’에 대한 비판과 일맥하는 지적이다.

실제 덩샤오핑은 그 운동을 계기로 3번째 실각을 하게 된다. 자칫 다시 ‘사인방’이 발호하고 문혁의 시계바늘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미묘한 상황이 연출됐다.

저우언라이는 병세가 깊어 자칫 문혁의 시계바늘이 처음으로 되돌려진다면 만회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저우언라이의 안타까운 마음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1975년 9월 20일의 일이다. 이날 바로 저우언라이의 병세가 깊어져 4번째 수술을 정해져 있었다. 저우언라이는 무슨 생각인지, 과거 몇 년 전 논의된 ‘오호계사’의 기록을 다시 보고 싶다고 가져오라 했다.

‘오호계사’는 공산당의 지하투쟁 시절 저우언라이 이름으로 작성된 투항서다. 앞서 이야기했듯 국민당 등에 의해 조작됐다는 저우언라이의 주장이었지만, 장칭 등 사인방은 실제 투항이 있었다고 저우언라이를 핍박했다.

문화대혁명은 백성을 위한다면서 평생을 청렴하게 산 해서지만 왕정에 반하지 못해 공산당의 정신이 부족했다고 비판을 받으면서 시작된 것이다.

지하공산당 시절 거짓 혹은 실제 한 때 투항하기도 했었던 공산 혁명 지도자들이 적지 않았고 문혁은 이들의 투쟁 정신이 박약하다고 비판해 실각시켰다.

저우언라이도 비슷한 위기에 처했지만, 관련 자료들을 조사한 보고서에서 마오쩌둥이 그를 지지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그런 자료를 저우언라이가 다시 보자고 한 것이다.

1975년의 마우쩌둥이 다시 일으킨 ‘반우경화바람 운동’이 얼마나 저우언라이를 두렵게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간호원이 병실에 자료를 가져다줬다. 그 기록에는 마오쩌둥의 지지도 적혀있었다. 저우언라이는 떨리는 손으로 기록물에 “저우언라이, 수술을 앞두고”라 다시 서명을 한다. 그리고 침대 누워 수술실로 이동하면서 모두가 들으라고 외친다. “나 저우언라이는 당과 인민에 충성했다. 투항파가 아니다.”

아쉽게도 수술은 실패였다. 이미 암이 온몸에 전이된 상황이었다. 수술을 하려던 의료진은 다시 봉합을 한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며 병실을 지키던 혁명 간부들을 쳐다본다. 중국 자료는 저우언라이의 수술을 덩샤오핑, 리센녠, 장춘차오 등이 지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덩샤오핑이 말했다.

“어떻게 하든 고통없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해주게!”

덩샤오핑도 저우언라이가 없는 당시를 견디기 힘들었을 수 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그리고 한 달 뒤 저우언라이는 다시 한 번 수술을 받게 된다. 제 5차 수술, 사실상 마지막 시도였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저우언라이는 이번엔 덩샤오핑을 찾는다.

사실 자칫 마취에서 못 깨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마지막 길임을 알기라도 하듯 저우언라이는 덩샤오핑을 찾았다. 덩샤오핑이 병원침대 곁에 다가가자 저우언라이가 힘겹게 말했다. “덩샤오핑 동지, 고생이 많았어. 지난해 정말 잘했네. 나보다 훨씬 나아”

그리고 1976년 1월 8일 저우언라이 총리는 세상을 떠난다. 당사는 마지막까지 덩샤오핑에게 힘을 실어주고 떠났다고 평하고 있다.